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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못 읽는 티켓팅 보안문자, 우리는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 글자 지각의 과정
  • 기사등록 2024-04-09 0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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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서정원 ]


여러분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팅을 해본 적이 있나요? 함께 그 경험을 떠올려봅시다. 초조한 마음으로 서버 시계를 초 단위로 바라보고 있다가, 티켓 오픈 1분 전에 이르게 되면 긴장과 초집중이 뒤섞인 상태의 나 자신을 자각하게 됩니다. ‘내 자리 하나쯤은 건지겠지’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품은채로 59초에서 정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떨리는 손끝으로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고 나면, 포도알(빈 좌석 표시)을 기다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관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보안 문자 입력창입니다. 이 단계에서 올바르게 글자를 입력해야만 그제야 좌석을 선택하는 본 게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긴장해서 손이 덜덜 떨리는 채로 타자를 치다 보면, 왜 내가 컴퓨터한테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어야 하는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이 아니라 내가 걸러내지는 게 아닌지, 이런 이유 있는 불평들이 절로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불평은 아마도 이상하게 생긴 문자들에게 대한 불평일 것입니다. 



보안 문자는 자동화된 프로그램이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왜곡을 많이 가한다고 합니다. 문자마다 색깔이나 각도를 다르게 하고 아예 다른 글자와 겹쳐놓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간인 우리에게는 읽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똑똑한 컴퓨터도 읽지 못하는 글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건지 한 번쯤 궁금하진 않으셨나요? 오늘은 인간이 글자를 지각하게 되는 과정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선 하나하나를 뜯어보기 : 세부특징 통합이론


우리는 글자 A를 볼 때 그냥 <에이>라고 읽어지지만, 글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 \, ━와 같이 여러 개의 세부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도만 조금 다르지 그 선이 다 그 선인 것 같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뇌 속에서는 이러한 자잘한 요소 하나하나들을 각각 맡아서 담당하는 <세부특징 탐지기>라는 세포들이 존재합니다. 세로선을 담당하는 세포, 가로선을 담당하는 세포 같이 말입니다. 


Hubel & Wiesel(1962)은 상대적으로 예리한 시력을 가진 동물인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여 이 세포들의 존재를 밝혀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고양이의 뇌 피질에서 시각 신호가 최초로 도착하는 일차시각 피질(V1) 영역에 센서를 이식하고 난 다음, 여러 그림 자극들을 제시할 때마다 센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실험 내내 고양이는 마취된 채로 머리가 화면을 향해 고정되어 있고, 고양이의 뇌 반응만 기록되는 방식입니다.




이들은 그림 슬라이드를 넣으면 큰 화면에 빛으로 쏴주는 영사기를 통해 자극을 제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점 자극으로만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그림 슬라이드의 가장자리 선이 화면에 비췄을 때 신경세포의 활동이 눈에 띄게 치솟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에 힌트를 얻어 이후 실험은 점 자극이 아닌 선 자극으로 바꾸어 진행하였더니, 특정 각도로 기울어진 선 자극에 반응하는 세포들을 포착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포를 단순세포(simple cortical cells)라고 하는데, 시각 자극이 특정 방위(각도)일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세부적이게도, 우리 뇌에는 각각의 각도마다 구분되어 각각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순세포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왼쪽으로 30도 기울어진 선’을 담당하는 세포, ‘오른쪽으로 60도 기울어진 선’을 담당하는 세포가 모두 있는 것입니다. 이 세포들 덕분에 우리는 각도를 아주 빠르고 효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다른 복잡한 것을 판단하지 않고, 주어진 한 가지만 담당하는 세포들을 세부특징 탐지기라고 합니다. 단순세포 또한 ‘내가 담당하는 시각 수용장 영역에, 내가 담당하는 방위(각도) 자극이 있는지 없는지’만을 판단하는 세부특징 탐지기입니다. 결국 우리가 글자를 읽는 것 또한 세부특징 탐지기의 역할이 큽니다. 글자 자극이 눈으로 들어오면 우리 뇌에서는 이러한 세부특징 탐지기를 통해 글자의 요소들을 각각 분석하고, 그 정보들이 통합되면 어떤 글자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흐름: 맥락효과


우리는 글자의 요소 하나하나를 인식해서 무슨 글자인지 판단하기도 하지만, 글자가 포함된 맥락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현상을 아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의 글자를 한 번 읽어보시겠어요? 


노란색으로 표시된 글자 하나를 볼 때는 어떤 글자인지 모호했다가도, 들어가 있는 단어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르게 읽힙니다. 이렇듯 글자가 단어 속에 나타나면 더 정확하게 인지되는 현상을 맥락효과의 일종인 ‘단어우월효과’라고 말합니다. 


단어우월효과를 밝혀낸 실험(Reicher, 1969)은 단어, 비단어, 낱자를 각각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실험참가자를 세 집단으로 나누고 각 집단에 ‘FORK’라는 단어 자극, ‘RFOK’라는 비단어 자극, ‘K’만 있는 낱자 자극을 아주 짧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집단별로 앞서 보여준 자극에서 ‘K’가 있었는지 ‘M’이 있었는지 판단하는 과제를 냈습니다. 자연스러운 논리대로라면 ‘K’만 보여준 낱자 자극 집단이 가장 과제를 잘할 것처럼 보입니다. 보여준 자극 그대로를 질문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FORK’라는 단어 자극 집단이 가장 높은 수행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어라는 맥락이 작동해서 ‘K’라는 낱자의 지각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효과 덕분에 위의 그림처럼 일부가 아예 가려져 있는 글자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맥락효과가 언제나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글 속에서 틀린 글자를 찾는 교정 업무를 볼 때는 오히려 방해될 수도 있습니다. 글이라는 맥락 덕분에 오타까지 원래 글처자럼 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금 전의 문장에서도 오타가 하나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읽어버리신 않으셨나요?

 


세부특징 통합 이론과 맥락효과의 시너지


앞서서 우리는 세부특징 통합 이론과 맥락효과를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뇌에서는 이 두 가지가 순차적으로 일어남으로써 글자를 지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먼저 글자 낱자의 선분들과 같이 물리적인 세부 특징 정보들을 이용하고 난 다음에, 글자가 포함된 맥락 정보를 합산시켜서 최종적으로 글자를 읽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티켓팅 보안 문자를 입력하던 순간에도, 이 기사를 읽는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여러분의 뇌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과정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답니다. 




<자료출처>

David W.Carroll (2009), 언어심리학(5판), 박학사

E. Bruce Goldstein (2015), 감각 및 지각 심리학(9판), 박학사

Hubel, D. H., & Wiesel, T. N. (1962). Receptive fields, binocular interaction and functional architecture in the cat's visual cortex. The Journal of physiology, 160(1), 106.

Reicher, G. M. (1969). "Perceptual recognition as a function of meaningfulness of stimulus material".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81 (2): 27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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